2008년 04월 18일
늑대와 향신료

흔히 국내산 판타지 소설 중에 상인이나 뭐 그런 쪽으로 쓴 소설들이 좀 있다. 대개는 앞선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마구 이익을 취하면서 거상이 된다던가.. 거상이면서도 용사고 마법도 잘하고 검술도 잘하는..-_-;; 애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런다. 늑대와 향신료라는 제목이 좀 거시기 하긴 하지만(뭐랄까 제목이 아주 안땡긴다고 할까..-_-;;) 이 소설은 중세의 상인 세계를 바탕으로 대단히 잘 쓴 상인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늑대의 화신 호로나 로랜스와의 썸씽에는 개뼉다귀에 붙은 구멍만큼도 관심이 없지만 중세 상인 시스템을 배경으로 하는 탄탄함이 재미있다.
행상인과 거주 상인, 그리고 중세의 도제 시스템, 상인과 상인의 거래와 지식 수준에 대한 논의(중세에 선물거래나, 신용거래, 어음, 금융업등등은 태동기였고 이 개념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았으니까..) 등등은 역사 쪽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는 대단한 흥미거리다. 특히 2권에서 로랜스가 엿먹는 장면이 있는데 정보의 제약에서 나오는 시세변동에 의한 손실이다. 지금이야 거의 일어날 일이 아니긴 한데 중세에는 매우 흔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용병들 때문에 상인들이 우회로를 택한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교회에서 양치기를 괴롭히는 문제도 그렇고 말이다.
동물의 화신이라는 설정이 판타지스럽지만(실제로 세상에는 그런 동물의 화신이 있는지도 모르지.. 단지 나는 운이 없어 그런 화신을 못만날 뿐이고..) 배경이 되는 중세유럽(한 14~15세기 정도 될까? 금과 은이 대량으로 유입되고 유통되면서 상업혁명이 일어나고 금융업의 태동기에 들어가는..)의 세계관 자체는 매우 탄탄하다고 해야할까.. 적어도 당시 사람들의 발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황철석에 의한 투기성 거래가 자신들의 명예에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대놓고 거래를 못한다는 감각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국내 판타지 쓰는 고딩들은 그냥 그 투기에 집단으로 참여했다가 현명하고 뛰어나고 고귀하신 주인공이 그 투기를 이용해서 큰 이익을 벌고 다시 그 이익을 상인들에게 베풀어서 아주아주 훌륭함과 고귀함을 보이는(...) 정형적인 패턴일 거고..(참고로 이건 매우 싸가지가 없는 상인들에 대한 일방적인 경멸 이상도 아닌거 같다..-_-;;)
작품에서 여러가지 경제감각들을 설명하긴 하는데.. 대화속에서 짚어내야 하는 고로.. 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3권에 나오는 선물거래라던가.. 선물거래의 개념을 미리 이해하지 않으면 로랜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죠.. 그리고 1권에서 나오는 은화 절하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원래 은화를 절하할 것이라는 정보를 쥔 상회에서 물 밑 작업을 벌여서 시중 은화를 미리 회수를 시도하죠.. 절상될 거니까 은화를 가지고 있다가 절상될 은화와 바꾸는 것이 이익이라고 떠들면서 말이죠.. 그런데 실제로는 절하였습니다. 그것도 꽤 큰 폭의..(은화의 절상과 절하는 은의 함유량을 높이냐 낮추냐 하는 거죠..) 그런데 로렌스가 벌이는 행동 자체는.. 은화를 모으는 것입니다. 그 자체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죠.. 여기서 절상이냐 절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은화를 모으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은화를 지급수단으로 가지고 있느냐 가치수단으로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문제는 중세는 고정환율제이기 때문에 지급수단으로서 모든 은화는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점이죠..-_-;; 변동환율제가 아니에요.. 이 시대는.. 그래서 기존의 은화도 은화 1개고 절하(혹은 절상)된 은화도 1개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은화를 회수해서 다시 녹여서 같은 은으로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이 필요하고(추가로 은을 매입하긴 어렵거든요.. 스페인의 경우는 신대륙에서 대량의 금-은이 유입되었고 로마시대부터 이 지역은 거대한 은광이 많았습니다.) 상회는 이걸로 돈을 벌어들인다는 설정이죠..
사실 이 시대에는 결재수단으로서의 화폐의 신뢰도는 함유된 금과 은의 함유량에 따릅니다. 같은 금화라도 결국 함유량이 높은 금화를 선호하게 된다는 거죠.. 원칙적으로 모든 금화는 1대 1거래지만 결재시 함유량이 낮은 화폐는 기피될 것이고 심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로마시대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네로때까지 실제적으로 금-은의 함유량 자체는 불변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로마 말기로 가면 함유량이 너무 낮은 저질 화폐가 많아지면서 경제력이 쇠퇴하는 사태까지..-_-;;
실제로 은화의 함유량이 낮아진 다는 것은 평가 절하입니다. 절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시장의 기본 원리는 최대한 화폐를 가지고 있으면 손해입니다. 물가가 오르고 같은 물건에 대한 화폐지급량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이 시대라면 대개 동전의 환전 비율이 더 낮아지는 형태로 나오겠죠..(기존에 동전 100개에서 동전 95개 된다는 식의..) 그러니까 대개는 은화를 처분하고 금화로 바꾸던가 하는게 이익이겠죠.. 그렇지만 트레니 상회는 오히려 은화를 모읍니다. -_-;;
아마 풀려나와있던 은화를 회수해서 다시 녹여 주조하기 때문에 그 차익분 만큼의 이익을 얻어낼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멜라니 상회에서 하는 짓과 비슷했구요.. 그래서 트레니 상회에서는 은화가 절상된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상인들에게 은화를 모으게 해서 그 모인 은화를 회수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듯 하군요.. 실제로 은화를 모은 시점에서 사실은 절상이 아닌 절하가 된다고 알려주면 상인들은 은화를 보유할 수록 손해이기 때문에 은화를 처분해야 하고 그 은화를 오히려 싼 가격에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보입니다.(왕을 상대로 회수된 은화를 가지고 협상할 수 있는 것은 소위 초 대형 상인집단 정도입니다. 시장의 일반 상인들은 택도 없는 이야기죠..) 화폐의 주조권 자체는 정부에 있기 때문에 절하된 상태에서 계속 더 비싼 같은 종류의 은화를 가지고 있어봐야 손해죠..ㅡ.ㅡ;; 어차피 둘 다 은화 1냥으로 계산도거든요.. 과거 은화도 동전 95개로 거래될 것이고 나중에 나온 은 함유량이 낮은 은화도 95개로 거래될테니.. 중소 상인들은 손해보기 전에 동전 100개 혹은 98개 수준으로 사주겠다는 대형상회들의 압박에 응할 수 밖에 없게되죠..
뭐 금 밀수야 뻔한 이야고.... 3권에 나온 선물거래는 이런 형태입니다. 일단 돈을 미리 받아놓고.. 인도 자체는 축제 마지막날 하게 한거죠.. 당장 로렌스도 황철석이 없기 때문에 황철석을 사서 줘야 합니다. 일단 현재 황철석이 예를 들어 은화 1개의 1개라고 하죠.. 그럼 은화 300개니까 로렌스는 300개의 황철석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장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가 끝난 후에 주기로했죠.. 로랜스도 황철석이 300개가 없기 때문에 사서 줘야 합니다. 축제 마지막날 황철석의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은화 2개로.. 그럼 로렌스는 300개의 황철석을 인도하기 위해서 600개의 은화를 써야 하고 로랜스는 300개의 은화를 손해본 겁니다. 상대는 은화 300개만큼의 이익을 올린거죠.. 현재 300개의 황철석을 사기 위해서는 600개의 은화를 써야 했지만 이미 300개의 은화를 지급하고 결재를 끝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로렌스는 계략을 써서 황철석의 가치를 폭락시켰죠.. 황철석의 가격이 거래시점에서 1개에 은화 1개에서 10게에 은화 1개로 떨어졌다고 합시다. 그럼 로랜스는 은화 30개만 쓰면 300개의 황철석을 구매할 수 있고 그걸 인도하면 됩니다. 로랜스는 270개의 은화만큼 이익을 본거죠..
선물거래는 거래시점과 인도시점이 다르다는 특징이 있고 가격탄력성이 심한 상품의 경우 거래시점과 인도시점의 가격차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도시점에서 상품가격이 오르면 미리 선물로 사둔 사람이 이익인 거고 인도시점에서 가격이 떨어지면 물건을 파는 쪽이 이익인 겁니다.(물론 로렌스는 파는 쪽이죠.. 물건을 양도하고 돈을 받았죠..)
대개의 경우 선물거래가 투기적 성향을 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사는 쪽에서 지나친 폭락만 아니라면 이미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리스크 관리라는 측면에서 유리할 때도 있습니다. 싸면 좋은데 비싸질 지도 모르니 미리 예산을 편성해서 해당 품목에 대해 미리 필요량을 구매해 두는 거죠.. 만약 가격이 폭락하면 눈물나는 거지만 그 만큼 오를지 말지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서 재고 관리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유리할 수 있죠..
만약 상대 상인이 그 물건을 자기도 팔게 아니라 자기가 어떤 목적으로 쓸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가공해서 팔테니 황철석 가격은 총 상품판매시에 나갈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미리 책정했겠죠..) 상대 상인도 그 황철석을 판매용으로 가지고 있던 거라 문제가 되었던 겁니다..
Ps. 이걸 보고 나니까 대항해시대가 하고 싶어지는..-_-;; 대항해시대 4에서는 상품이 얼마나 유통되었는지 뿐아니라 관련 상품군의 시세도 중요했거든요.. 다른 지역(아프리카에서 대서양 상품을 판다던가.. 하는 식의)의 상품, 그리고 높은 인플레(소위 호황기라고 뜨는데... 일시적으로 대량의 돈을 뿌리는 거죠.. 투자 같은 걸로..) 여기에 미리 해당 상품군을 유행시키는 겁니다(만약 아메리카라면 구매하기 좋은 바닐라를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추를 유행시키는 거죠.. 그럼 해당 대륙에서 향신료가 유행되면서 가격이 뜁니다. 하지만 유행시키기 위해서 무료로 배포한 상품은 이미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서 적어도 해당 도시는 상품 가격이 좀 낮죠..) 이렇게 되면 향신료 같은 것은 정말 떼돈을 벌 수 있었죠..(한 토털 10~15만 정도 투자해서 몇 백만은 벌어들이는..-_-;; 물론 캐릭터들의 능력치가 좋아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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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4/18 11:42 | 라이트노벨&애니메이션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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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감사드립니다.. 뭐 경제학을 잘 아는 것은 아니라..ㅡㅅㅡ;; 하지만 한국에 흔히 보는 상인류 판타지 보다 구성 자체가 잘되어 있는 것은 확실한 듯 싶네요..
흠 그런가요? 생각보다 금융업의 발달이 빠르긴 하네요..ㅡ.ㅡ;; 하기사 통화량 자체가 절대 부족하다면 오히려 어음이나 신용거래가 더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네요..
주화의 순도에 따른 보유하고자 하는 성향은 그렇긴 하겠죠.. 그렇지만 주화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도안은 그대로 가면서 함유량만 낮추는 것이라서 구분하긴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뭐 은화를 녹여서 확인하면 사형이라던가..-_-;; 전제 조건 자체가 은화의 함유량을 쉽게 확인할 수 없다니까요..)
주화의 함유량 자체는 지역마다 혹은 상황에 따라 편차가 심했지요..ㅋㅋ 당장의 이득이라기 보다는 주로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하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당장 돈이 필요하니 빌릴 수 없으면 마구 찍어내고 보는 거죠...-ㅅ-;;